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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동성당에서 자유공원 쪽으로

by click인천닷컴 2015.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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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동성당에서 자유공원 쪽으로

 

인천 답동에 위치한 천주교 인천교구의 대성당으로, 성당은 벽돌조 고딕양식으로, 1890년대에 건축된 대한민국의 성당 중에서 성공회 강화성당 등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라네요.
프랑스 천주교 선교사 코스트(한자명 高宜善) 신부의 설계로 1897년에 처음 건립되었고, 1937년 코스트 신부와 같은 소속인 P. 시잘레(한자명 池士元) 신부의 설계로 증축되었다니 프랑스 작품이었군요.
앞면에 설계된 3개의 종탑은 건물의 수직 상승감을 더해주며, 8개의 작은 돌로 된 기둥이 8각의 종머리 돔을 떠받들고 있습니다.
현재는 보수공사 중이어서 화려한 외관의 모습이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방문 때 새로 보수한 모습을 아래에 덧붙이겠습니다.

 

중구청 근처에 길가에 놓인 화분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중구청이 관광객들을 위해 정말 많이 신경쓰고 있음이 눈이 보입니다.

 

차이나타운 끝자락에서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을 바라본 모습니다. 자유공원은 정상에 맥아더동상과 한미수교 100주년 탑 밖에는 볼 것이 없어서(?) 아래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다시 중구청 뒷쪽 골목을 달리고 있는데 내려다 보이는 음식점 앞마당이 보기 좋아서 내려다 보았습니다. 전통음식을 내놓고 있는 "담쟁이넝쿨"이라는 음식점입니다.

 

 

세월을 가능하기 힘든 돌계단이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을 비껴가기 힘들었는지 조금 삐져 나와 있는 모양이 조금은 힘겨워 보입니다.

 

골목골목마다 정겨운 광경이 펼쳐져 있어 계속 머무르게 하네요. 전에도 자주 영화촬영이 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인천 명함, 스티커, 전단지제작 문의  032-888-9739 / 010-2926-2050

   http://www.in1000.com/notice  

 

 

 

 

前에는 시청관사였던 역사자료관은 올망졸망 아름다운 정원을 갖추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사업가 개인의 저택으로 사용되다, 해방후 동양장이라는 레스토랑으로, 다시 송학장이라는 사교클럽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이후 인천시에서 매입해 한국식 건물로 개축 시장공관으로 사용되다가 2001년 10월 인천 시민의 날을 맞아 역사자료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천 명함, 스티커, 전단지제작 문의  032-888-9739 / 010-2926-2050

   http://www.in1000.com/notice  

 

 

 

개화기 때 각 계의 외국인 들이 이용하던 사교클럽으로 가볍게 모이던 장소가 아니라 각국의 이권을 챙기고 서로 견제하는 치열한 외교의 현장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물포 구락부 뒷편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걸어 들어가 보면 포토존이라 할만큼 분위기있는 하트 모양의 그네가 있습니다. 커플이 앉아 인천바다를 바라보며 미래를 설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중구청 쪽에서 홍예문을 들어서기 전 왼쪽에 골목에 바로 자리하고 있는 한쪽은 커피를(아미가) 한 쪽은 한방차를 판매하는(옛길) 분위기가 아주 좋은 카페가 있습니다. 두 곳 모두 계단을 통해서 들어가는데 입구가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커플이 아니면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을 듯 싶네요. 저도 와이프 미용실 간 사이 나온 외출이라 겉에서 사진만 찍었네요~

 

무지개처럼 생긴 문이라는 뜻의 홍예문(虹霓門)은 인천 시내 남북간 교통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철도 건설을 담당하고 있던 일본 공병대가 1906년 착공하여 1908년에 준공하였으며 처음에는 혈문(穴門)이라고 불렀다.

각국 지계(各國地界) 형성 당시 조선 정부의 계획에 반대한 일본인들은 조선과 만주 침략 계획과 인천으로 몰려든 일본인들로 인하여 거주공간 확장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지계(地界)의 확장을 꾀하게 되었다.

당시 교통사정이 매우 열악했으므로 일본 지계나 항구에서 만석동으로 가려면 서북 해안선을 따라 가야 했으므로 일본인들은 비교적 단구간인 현 송학동 마루턱을 깎아 만석동으로 통하는 길을 만듦과 동시에 화강석 홍예문을 쌓아 각국 지계와 측후소 쪽으로 진출을 꾀하였다.

축조양식은 화강석과 벽돌을 혼용(混用)한 아아치 구조로서 그 당시 일본의 토목공법 및 재료에 대한 사료로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전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모든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수탈의 목적으로 쓰였음에 가슴이 아려옴은 어쩔 수가 없다. 

 

도원역에서 하차해 동인천역 방향으로 걷다보면 대장간이 나옵니다. 요즘 참 보기 드물지만 여전히 낫과 망치, 호미, 등 산과 육지, 바다에서 쓰는 도구를 두드려 내는 곳입니다.

 

인천 명함, 스티커, 전단지제작 문의  032-888-9739 / 010-2926-2050

   http://www.in1000.com/notice  

 

 

 

 

도원역 앞에 있는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을 마지막으로 반나절의 인천 구도심 여행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가보지 않은 곳이 너무 많아 또 출발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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