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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있는 권세들에게 복종?,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by click인천닷컴 2016.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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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의 카르텔'과 로마서 13장

- 안진섭 목사 "절대적 명령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책임 말한 것"

 
설교 본문 : 로마서 13:1-7, 계시록 13:1, 11

 

최근 대통령과 여러 참모들, 그리고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으로 위정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극에 달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기독교계 내부에서는 이 문제가 신약성경 로마서 13장에 대한 해석 논쟁으로 번졌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로마서 13장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무조건 권세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다른 분들은 그 말씀은 왕정 시대에 주어진 것이므로 민주공화국 시대에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아마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 가운데서도 그런 논쟁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런 논쟁 자체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고 해도 이런 혼돈의 시국에 과연 그리스도인으로서 로마서 13장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지켜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로마서 13장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옳은지, 또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주보를 보시면 제가 오늘 설교 제목을 로마서 13장과 계시록 13장이라고 정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설교 제목이라기보다 설교 본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본문은 로마서 13장의 일부와 요한계시록 13장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본문을 아예 설교의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로마서 13장과 계시록 13장을 설교 제목으로 정한 이유는 이 두 본문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전통적으로 로마서 13장은 친정부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자주 인용되었습니다. 반면 요한계시록 13장은 위정자들의 불의에 저항하라는 말씀으로 개혁자들에 의해 자주 인용되었습니다. 이 두 본문이 가지고 있는 그런 해석사적 상징성 때문에 오늘 저는 설교의 제목을 아예 로마서 13장과 계시록 13장이라고 정했습니다.

저는 오늘 주로 사도바울이 기록한 로마서 13장을 살펴보고, 마지막에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계시록 13장을 이와 비교하여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로마서 13장에는 기본적으로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해석할 때 학자들 사이에서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는 몇 가지 이슈가 있습니다. 그런 이슈들을 중심으로 본문을 살펴보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첫째로, 여기서 위에 있는 권세들이란 누구를 가리킬까요? 본문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일차적으로 여기서 위에 있는 권세들이란 공권력을 가진 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서신을 기록할 때를 보면 당시 로마 황제와 여러 왕들, 그리고 황제의 명을 받아 일하는 고위 관리들을 가리킬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당시는 절대군주인 황제가 존재하던 왕정 시대이고 지금은 국민들이 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공화국 시대입니다. 왕정 시대와는 달리 대부분의 현대 국가들은 삼권분립이 정착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은 공권력을 가지고 있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모든 관리들을 위에 있는 권세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최근 여기서 위에 있는 권세들이 국민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에 위에 있는 권세들이 국민을 가리킨다는 해석입니다. 매우 파격적이고 한편 매력적인 해석이기는 하지만 과연 합당한 해석인가에 대해 저는 의구심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문맥을 볼 때 그 권세자들이 선을 행하는 자를 칭찬하고 악을 행하는 자를 벌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권세자들이 국민이라면 국민이 선을 행하는 국민을 칭찬하고 악을 행하는 국민을 벌한다는 뜻이 됩니다.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이 말씀이 주로 일반 백성들로 구성된 당시 로마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로마제국의 관리들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한 내용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여기 나오는 권세들을 국민들이라고 보는 것은 널리 인정받기 어려운 해석인 것 같습니다.

 

둘째로,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조금 전 읽은 1절 하반절을 보면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말씀에서 공권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이고, 모든 공권력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언뜻 보면 이 말씀은 권력을 절대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많은 독재자들이 이 말씀을 자신들의 독재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사용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그들에게 부역하던 친일파들은 이 말씀을 이용하여 일본에 저항하던 기독교인들을 탄압했습니다. 또한 유신 독재가 엄혹하던 시절 당시, 김종필 총리 역시 이 말씀을 근거로 독재에 저항하던 기독교인들을 꾸짖었습니다. "너희들은 성경도 모르느냐? 성경에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여러분, 이런 적용이 과연 옳은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결단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이런 식의 말씀 적용은 근본적으로 말씀을 대하는 잘못된 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경을 적용하는 바른 방법은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상대방을 억누르고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성경을 적용하는 바른 방법은 그 말씀을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먼저 적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이 말씀을 이용하여 남편이 아내를 억누르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말씀에 대한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반대로 "남편들이여 아내를 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이용하여 아내가 남편을 원망하고 책망하는 것도 말씀에 대한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말씀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게다가 로마서 13장의 내용 자체도 독재자들의 권한을 강화해 주기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도리어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난다는 이 말씀은 권력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말씀입니다. 당시는 모든 권세가 황제로부터 난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로마 황제가 신격화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사도바울은 모든 권세는 황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이용하여 자신의 독재 권력을 합리화하는 것은 말씀에 대한 오용을 넘어서 말씀을 악용하는 것입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이라는 말씀은 그 권세의 신적 기원을 강조하는 말씀이지만 그와 동시에 모든 권세는 그 기원이신 하나님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셋째로, 공권력을 가진 자는 어떤 자세로 일해야 할까요? 본문 4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이 말씀은 권세자들을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표현합니다. 따라서 공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이 절대 권력자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사역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일해야 합니다.

권력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그 권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선을 행하는 자를 칭찬하고 악을 행하는 자를 벌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권력자는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국민들의 공적인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의 공적인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역 방식이 바로 선을 행하는 자를 칭찬하고 악을 행하는 자를 벌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국민들의 공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계신 공직자 여러분들, 특히 오늘 본문의 이 말씀을 엄중하게 듣고 받아들이시길 권면합니다.

 

넷째로, 국가 제도나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은 절대적인 명령일까요? 만약 이 명령이 절대적인 명령이라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공권력에 복종해야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앞에서 언급한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앞에서 우리는 권세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자라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공직자가 칼을 찬 이유, 곧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이유는 악을 행하는 자에게 보응하기 위해서입니다. 공직자가 할 일은 선을 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고 악을 행하는 자를 처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공직자가 선을 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지 않고 벌을 준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공직자가 악을 행하는 자를 처벌하지 않고 눈감아 준다거나 더 나아가 상을 준다면 그때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이 말씀을 절대적인 명령이라고 해석한다면 백성들은 일제강점기에도 무조건 일본 제국주의에 복종해야 하고, 히틀러의 만행에도 말없이 복종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과연 이 말씀이 그렇게까지 절대적인 명령일까요? 그 어떤 엄혹한 독재를 하고, 그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공직자들에게는 무조건 복종하라는 말씀일까요? 사실 로마서 13장은 그런 우리의 질문에 대해 분명하게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말씀을 해석해야 할까요?

 

이런 경우 우리는 성경의 여러 다른 말씀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는 말씀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이집트의 바로가 히브리 산파들에게 죄 없는 갓난아이들을 죽이라고 했을 때 산파들은 바로의 명령에 불복종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모든 신하들에게 금 신상에 엎드려 절하라고 했을 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의 명령에 감히 불복종했습니다. 다리오 왕이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것을 금지했을 때, 다니엘은 목숨을 걸고 그 명령에 불복종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산헤드린 공회가 사도들에게 예수의 이름을 전파하지 못하게 했을 때, 사도들은 우리가 사람의 말을 듣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느냐 하면서 그 명령에 불복종했습니다. 심지어 우리 예수님도 누가복음 13:32에서 당시 왕이었던 헤롯 안티파스를 저 여우라고 지칭하셨습니다. 말씀의 문맥을 생각하면 여기서 여우는 교활한 짐승의 상징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시 왕이었던 헤롯을 강력하게 비판한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로마서 13장에 나오는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은 절대적인 명령이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인도 시민으로서 공권력에 복종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명령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이제 이 문제를 좀 더 심도 있게 살펴보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만약 공권력을 가진 자들이 공의를 저버리고 불의의 편에 선다면, 그리하여 치명적일 정도까지 공의가 집행되지 못한다면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문제에 답을 얻으려면 요한계시록 13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두 짐승이 등장합니다. 한 짐승은 바다에서 나오고, 다른 짐승은 땅에서 올라옵니다. 요한계시록 13:1을 같이 보겠습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모독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이 말씀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번에는 요한계시록 13:11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이 말씀은 땅에서 올라온 짐승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이 두 짐승은 사탄의 하수인들입니다. 사탄은 자신을 따르는 악한 대리자들을 내세워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합니다. 예수님에게 패배한 사탄의 역습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두 짐승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첫 번째 짐승은 일차적으로 로마제국을 가리킵니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할 때는 대략 주후 90-96년사이었고, 그때는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로마제국을 다스리던 시절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철저히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나오는 짐승이 항상 로마제국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짐승은 역사 속에 존재했던 수많은 강력한 국가들의 모습으로, 교회사 속에서 다채롭게 등장하였습니다. 20세기에는 히틀러가 지배했던 독일, 천황을 숭배하던 일본 등이 이런 짐승이 되었습니다.

계시록 본문에서 두 번째 짐승은 일차적으로 로마제국의 여신 숭배와 황제숭배를 전파하는데 앞장섰던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정치적으로 강력한 제국을 이룬 로마는 어느 순간부터 여신 숭배와 황제숭배를 결합하여 제국의 백성들에게 우상숭배를 강요하였습니다. 이런 거짓 선지자들도 역시 사탄의 하수인들입니다.

이와 같이 요한계시록 13장은 타락한 권력자들을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표현합니다.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은 권세자를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불렀지만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권력자들을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요? 이런 차이가 발생한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로마서 13장에서 바울이 의도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바른 원리를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1-11장이 기독교 교리를 다룬다면 12-16장은 실제 삶을 다룹니다. 로마서 12장에서 바울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13장에서는 세상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제국의 권력자들에 대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관하여 원론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공직자들은 선한 자를 칭찬하고 악한 자를 벌하는 공권력을 집행하기 위해 세워진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공직자들에게 복종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납세의 의무를 다하는 모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로마서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공직자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원리적 측면을 다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다릅니다. 요한계시록은 전체 맥락에서 볼 때 사탄의 압제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승리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 사도 요한은 당시 로마제국과 거짓 선지자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하여 악한 일을 도모하는지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다시 말해 악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여러 상징들을 통하여 그 당시 초대교회와 또 현재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런 사탄적 악에 굴복하지 말고 하나님 편에 서라고 성도들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로마서가 원론적인 측면에서 공권력을 집행하는 공직자들에 대해 취할 태도를 보여 준다면, 요한계시록은 실제 상황에서 그들의 부정하고 악한 실상을 드러내어 그 악에 굴복하지 않도록 성도들에게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에는 역사적으로 두 세력이 존재하였습니다. 한 세력은 불의한 권력에 굴복하여 그에 부역하였고, 다른 세력은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대다수의 교단들은 공식적으로 신사참배를 가결하였습니다. 그때 우리 침례교단은 공식적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했다가 교단을 폐쇄당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장로교회는 공식적으로 신사참배를 결의했지만 이에 반발하는 일부의 성도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하였고, 나중에 그들이 고신파가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이렇게 일본 제국주의의 악에 굴복한 세력이 있었고, 끝까지 저항한 세력이 있었습니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역시 비슷한 양상이 반복되었습니다. 당시 기독교 안에는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자들을 축복해 주는 세력도 있었고, 그런 쿠데타에 반발하여 저항한 세력도 있었습니다.

의미 있는 것은, 지나고 나면 누구나 다 그런 악한 권력에 저항한 사람들을 자랑스러운 우리의 선배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날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에 동참한 선배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 새누리교회도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일본에 저항했던 안이숙 사모님께서 남편이신 김동명 목사님과 함께 개척한 교회가 아닙니까? 우리는 그런 신앙의 선배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이런 악은 지금도 우리의 삶에 실재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의 식민지 상태가 아닙니다. 군사독재 치하도 아닙니다. 대놓고 기독교를 탄압하는 시대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하고 불의한 일들은 여전히 이 나라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니 아마도 악하고 불의한 일은 우리 예수님께서 재림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13장에서 그런 악의 실체를 고발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성도들이 그런 악의 실체를 바르게 알고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상이 누구든, 그 대상이 어떤 것이든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저버리고 불의를 일삼는 자들에게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악의 실체인 사탄과 사탄의 종노릇하며 이 땅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저항해야 합니다.

물론 그와 동시에 우리는 로마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나라의 좋은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하고, 일상에서 법을 지키는 일에 마땅히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법을 잘 지키는 모범적인 시민이 되는 것과 불의한 일에 저항하는 것은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모순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불의한 일에 저항하는 중요한 목적은 이 나라를 공의의 법이 살아있는 좋은 나라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주기도문에 있는 것처럼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미국 대선을 앞두고 존 맥아더 목사가 설교 전에 자신의 의견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존 맥아더 목사가 주로 강조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이 세상 나라는 다르므로 누가 선출되든지 상관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존 맥아더는 계속 "don't matter"를 반복했습니다. 세속 정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존 맥아더 목사는 결국 세속 정치에 개입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문제도 복잡한데 제가 미국 목사의 이야기를 꺼내서 미국 대선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그 분의 말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존 맥아더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땅의 나라가 어떻게 되든 관계없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왜 예수님은 그냥 하늘만 바라보라고 하지 않고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우리는 단지 죽은 뒤 천국에 가서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가시적으로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don't matter"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힘써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들이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이 나라가 더 이상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가 더 이상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하나님의 종이 되어 백성들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끼리 또 재벌들과 연계하여 악의 카르텔을 만들어 대다수의 국민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이런 시국에도 여전히 어떤 목회자들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무조건 복종하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과 적용이 아닙니다. 로마서 13장은 무조건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고 한 말씀이 아닙니다. 어떤 악을 행해도 무조건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법을 잘 지키는 모범적인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씀인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그런 말씀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단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때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믿는 복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주신 성령 하나님은 로마서와 계시록을 다 그의 교회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처럼 계시록의 말씀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로마제국과 그에 부역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비판한 사도 요한의 말씀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한국교회가 편향되거나 왜곡된 말씀을 가르치고, 권력자들에게 부역하는 악의 하수인이 된다면 지금의 젊은이들이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우리 한국교회는 이 나라에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그 말씀으로 이 땅의 현실을 바르게 분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은 사방에서 우리를 공격합니다. 온갖 다양한 궤변으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우리를 사탄에게 종노릇하게 만듭니다. 그런 거짓된 가르침에 속지 마십시오. 악한 세상의 유혹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이 악의 실체를 분별하여 이 땅에서 불의하고 악한 일들을 몰아내고 정의롭고 선한 나라를 만드는 일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펌] 이 글은 대전 새누리2교회 안진섭 목사의 2016년 11월 27일 주일예배 설교 '로마서 13장과 요한계시록 13장'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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